
5. 탈통
관통 후기라고 해놓고 탈통이 왜 있는가 하면 진짜로 중간에 탈통을 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나는 상대가 조금이라도 부담을 느낀다 싶으면 빠꾸하는 편이다. 사심이 있을 때에는 더더욱 그렇다. 이게 무슨 말이냐. 쓸데없는 걱정도 엄청 한다는 거다.
탈통의 이유는 간단했다.
그냥 조심스러워 하시는 것 같은데 그게 부담스러워서 선을 그으시는 건 아닐까 했던 거였다.
산개: 훤님은 그런 걸로 부담스러워하지 않으신다니까.
지니: 넌 생각이 너무 많아.
나:

인간의 눈을 가리는 것은 공포다. 나는 합의 앤캐 오너님에게 부담을 드리고 싶지도 않았고 이대로 탈통하면 평범하고 즐겁게 결혼관 연애관을 즐길 수 있는데 마음 같은 걸 가져서 괴롭고 싶지 않았다. 이쯤되면 알겠지만 나는 극도의 안전 지향 주의다. 캐오 분리형 인간이라 나만 사심 없으면 장땡이란 뜻이다. 결국 커뮤의 인간 관계란 사람이 종이 인형을 수단으로 해서 교류하는 게 아닌가. 사람하고 틀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탈통하고 건어물이 됐다.

Q. 헌정 시나리오는요?
그래. 헌정 시나리오. 나는 헌정 시나리오를 쓰고 있던 와중이었다. 이미 개요 진상 스토리 얼개와 맵 구상까지 전부 다 해놓은 상태. 하지만 어차피 이 상태로 중간 세이브 된 시나리오가 2n편인 데다 처음엔 공개할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만둬도 상관이 없었다. 관계캐에게 헌정하는 건 처음이라 부담스러워하지 않으실까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솔직해지겠다. 이전에도 관계캐에게 헌정하려는 시나리오를 중간 세이브 해둬놓고 이 시나리오에만 망설인 건 구관캐여서다. 하지만 사람이 한 번 겁을 먹으면 솥뚜껑 보고도 자라인 줄 아는 법 아니겠나.
하지만 관통난 날 이미 그 주 일요일로 세션 약속을 잡아버린 상태였다.
Q. 시나리오 완성도 안됐는데 약속을 잡았다고요?
A. 기한 전에 다 쓸 자신이 있었습니다.
Q. 탈통했는데도 계속 쓰신 건가요?
A. 시나리오에는 로맨스 요소가 없었습니다…….
애초부터 소관타 시나리오도 아니었다. 충분히 친구끼리 다녀올 수 있는 시나리오였고 여차하면 초면 AU로도 갈 수 있게 작성한 거여서 로맨스 요소는 사실상 제로에 가까웠다. 고록은 후일담으로 줄 생각이었으니까.




1부에서 호연이가 악몽을 꾼다고 설명했었다. 호연이가 꾸는 악몽은 돌아가신 부모님과 함께 호수에 갔다가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거였다. 행복했던 기억이 함께 하던 사람들을 잃으면서 괴로운 꿈으로 변해버리는 쪽이었다.
관통 후기 극초반에 관계 돼지라고 한 적이 있다. 로맨스나 성애 요소가 없더라도 오너와 캐 합이 맞으면 미친듯이 관계캐 덕질을 하기 때문에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했다. 그냥 그 시나리오는 어떠한 고난이 있어도 최선을 다해 함께 행복해지자고 작성한 거였으니까.

탈통한 채로 시나리오를 쓰는 와중에도 카톡의 썰과 봇계 애프터는 차곡차곡 이어졌다.




Q. 장난하세요? 이미 사귀는 거 아닙니까? 즐커러 규탄한다!
A. 제가 다 설명 드릴 수 있습니다. 선생님. 저는 즐커러가 아닙니다.
훤님은 앞서 부비자고 하면 쿨하게 부벼주시는 분이라고 말한 적 있다. 그래서 관통과는 별개로 연애관이든 결혼관이든 합앤이든 책임질 상황에서는 책임져주시는 분이다.
그렇다면 나는? 나도 엇비슷하다. 연애관이나 결혼관 맞짝사랑 등 로맨스나 성애관을 좋아하는 편. 캐오 분리가 명확하기 때문에 오너적으로 선은 분명히 긋지만 캐릭터 간의 사랑은 서사만 맞다면 합의 하에 AU로 먹든 오피셜로 먹든 별 상관이 없는 쪽이었다. 다만 합앤은 오너적으로 맞아야만 하는데 중요한 지점이 있었다.
나는 호캐든 관캐든 구관캐든 마음이 생길 여지가 있다면 제의를 받아도 절대 합앤을 하지 않는다. 물론 내가 제의하지도 않고. 합앤에게 치여서 고록 판 전적이 있었을만큼 서로 마음의 무게나 색이 다른 걸로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아한다. 나만 진심이지가 되고 싶지 않다는 뜻.

그리고 그 당시에는 이미 캐끼리 북치고 장구쳐서 결혼하는 게 사실상 오피셜화 된 상황이었다. 말하자면 오너들은 관계로 못 박지 않았는데 캐끼리는 너와 결혼까지 생각했어를 부르고 있었던 거다. 거기다 설레니 마니 하고 있으니 실상 이게 연애나 다름 없었던 건 맞았다.
무슨 생각하시는지 안다. 탐라 반응도 여러분이 지금 생각하는 바와 다르지 않았다.

나: 아니 사귀는 건 아닌데. 연애관이면 몰라도.
훤님: 연애관 할까요?
연애관?
연애관?
연애관?

진심 에바였다. 겐도도 없는데 에바에 탄 신지가 되고 싶지 않았다. 구관캐랑 연애관 짰다가 좆되면 보상은 누가 해주는가?
그래서 카톡으로 찾아갔다. 탐라에서 대놓고 연애관 못하겠다고 말할 수 없었다. 다들 하하처럼 사귀는 거야? 사귀는 거야? 플로우인데 진짜 구관캐였던 나는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 훤님. 저희 관계 연애관 말고 결혼관으로 돌릴 수 있을까요?
그리고 구구절절 쑈를 한다.
나: 제가 연애관이 싫은 건 절대 아닌데요. 며칠 전에 관통 났다가 탈통해서요.
연애관 하면 재관통이 날 것 같아서 그래요.
훤님: ?ㅁ?
나: 부담스러우시면 선후배관으로 돌리셔도 괜찮아요!
연애 감정 없어도 충분히 서로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는 관계니까요.
훤님: 그럼 차라리 합앤 하실래요?
호연이가 희주에게 캐관이 난 것 같아서.

호연이가 캐관이 났다니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여기서 문제가 있었다. 여희주는 무자각 관통이 난 상태였다. 그러니까 자각이 안 났다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오너님이 아무 생각 없으신 것까진 괜찮았다. 사람이 어떻게 맞관만 나겠는가. 다만 사랑의 짝대기가 꽈배기 상태라는 게 문제였다. 여희주는 원체 거리 두는 게 익숙하고 당연한 친구인데다 스스로의 내면이 단단한 마이웨이였고 로맨스적 감정이 없이도 충분히 호연이를 아꼈기 때문에 자각할 한 방이 없었던 거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는 여희주를 자각시키고 싶지 않았다. 지옥불에 기어들어가고 싶겠는가.
나: 제가 합앤을 하게 되면 분명 치이게 될 것 같아서 그건 안 될 것 같아요. 제 쪽에서만 진심이 되면 곤란하실 수도 있으니 결혼관이 좋을 것 같아요…….
Q. 결혼관을 하면 안 치입니까?
A. 세상에는 로맨스 감정 없이도 행복하게 결혼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으니까요.
그래서 결혼관을 하기로 합의했다. 탐라 사람들이 다 연애하는 줄 알길래 결혼관 했다고 언급도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갑자기 죽고 싶은 거다.

그렇다. 재관통이 났다.
6. 재관통

Q. 왜 재관통이 나셨나요?
A. 그걸 알면 재관통이 안 났을 겁니다.
그리고 재관통 자각을 하자마자 훤님에게 카톡이 왔다.
훤님: 좀 생각해봤는데요… 호연이가 결혼하면 지금보다 더 적극적이게 되는데 연애관이랑 차이가 없을 것 같아요.
그래도 괜찮으실까요? 부담스럽거나 곤란해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여러모로 망한 상황이었다. 훤님은 어쩔 줄 몰라 하시는 것 같고 나는 나대로 재관통이 났으며 호연이는 더 적극적이 된단다. 나는 이걸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여기서 괜찮습니다는 절대 할 수 없었고 안 괜찮다고 하면 그건 또 뭐라고 구구절절 덧붙여야 한단 말인가?
그리고 우리는 그 주 일요일에 세션을 앞둔 상황이었고 이미 목요일이었다.
결국 나는 관밍이라는 패닉 버튼을 누르게 된다. 그냥 다 까버리고 하얗게 불타버리자는 해탈이었다.
나: 제가 일단 재관통이 난 상태예요. 이걸 말씀드리는 이유는 저희 일요일 세션이 있어서고
이 점이 불편하시면 취소하셔도 괜찮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그런 거고요.
괜찮으시다면 세션을 다녀온 이후 관계 정리 다시 해도 될까요?
답장은 한 시간 뒤에 왔다.
훤님: 어떻게 말해야할지 진짜 고민하다 왔는데요. 저 진짜 희주 좋아하거든요.
전혀 안 불편하니까 세션 다녀온 이후에 다시 관계 정리해요.
이 즈음 이미 나는 도망가고 싶어진 상태였다.



봇계 애프터와 장문 썰이 쌓여 있었다. 재관통 난 상태에서 이걸 이으려니 돌아버리겠는 거다. 나만 진심인 상태에서 로맨스 텐션이 다분한 결혼 동거 썰을 풀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세션 전까지 썰과 애프터를 싹 끊어 버리면 이건 이거대로 예의가 아니었고 불편하다 오해하실까봐 심란했다. 현생과 심란함으로 늦어지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아예 토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지니: 넌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해? 그냥 편하게 합앤 하지.
푸딩님: 맞아요~. 전 합앤 했잖아요.
(↑이 사람은 관캐와 썰 / 세션을 지지고 볶다가 결국 합앤 쟁취했다.)
나: 난 그게 안 된다고!
결론 1: 썰에서 로맨스 텐션이나 성애적으로 느껴질 부분을 빼자.
결론 2: 서로가 소중한 원앤온리 위주로 방향을 틀어서 풀자.
결론 3: 봇계 애프터도 2번과 같이 풀되 자각은 내지 않도록 유의하자.
결론 4: 세션 다녀와서 행복하게 서로를 아끼는 친밀한 선후배관이 되자고 하자.

개비스콘을 먹은 기분으로 시나리오를 마무리 해 완성했다. 훤님이 배포 편하게 해달라고 하셔서 세션 끝나고 배포하기로 얘기도 했다. 브금 리스트도 쭉 정했고 세션 준비도 완료했다. 이제 정말 다 끝나 미뤄뒀던 현생을 치우는 와중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뉴짤이 오기 시작한 거다.



…
썰도 한번에 이만큼씩 주고 받고 있었는데

시나리오&세션 준비를 한다고 미뤄뒀던 현생을 치우느라 썰답이 늦어졌더니 로그에 이어지는 썰을 새로 또 풀게 된 거다. 세션 직전까지! 게다가 봇계 애프터도 이어지고 있었다! 이 모든 게 나흘도 채 안되어서!

이쯤 되면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된다. 이 사람은 나에게 왜 이러는 것인가? 나는 디코방의 까악새였다. 뉴짤과 뉴썰과 봇계 답멘을 볼 때마다 나라 잃은 사람처럼 괴로워했다.
나: 도대체 왜 이러시는 걸까?
상황 1: 내가 현생을 치우느라 답이 늦어졌다.
상황 2: 훤님은 내가 관통난 걸 알고 계시고
상황 3: 세션이 끝난 다음 관계 정리를 이야기 하기로 했다.
상황 4: 훤님은 관통은 나지 않으셨지만 이 관계를 굉장히 아끼신다.
합리적 추론: 좋아하는 관계캐를 잃으실까봐 불안하신 거다.
산개: 유일 찐앤오인 나한테도 저렇게까지 안 해. 치인 거라니까.
나:

그 와중에 친구들이 타로와 오라클도 봐줬다.
나: 세션 끝나고 선후배관으로 돌리자고 하려는데 동거 결혼 짤 받았어. 이거 어떻게 하냐.
지니/곰주: 관계 애매해진다고 뜨는데. 여러모로 곤란해질 것 같으니까 그러지 마라.
나: 세션 끝나고 어떻게 될까.
곰주: …….
나: 뭔데?
곰주: 아무튼 갔다 와봐.
나: 뭐야?
곰주: 그냥 묻지 말고 갔다 와보라고.
7. 세션
그래서 세션을 갔다. 나는 원래 하루 평균 세션 가능 시간이 2시간 30분에서 3시간 가량이다. 중간에 30분 가량 쉰다고 해도 끽해야 5시간 하는 정도가 최선. 그래서 호연이와의 세션도 3시간으로 계산해 3일을 잡아 둔 상태였다.
그런데 너무 재밌는 거다. 그래서 오버 페이스로 달렸다. 나중에 세 보니 10시간을 풀로 땡겨 하루 안에 세션을 끝내버렸더라.

아무튼 역경과 고난이 있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정말 즐겁고 재미있었다. 하나만 빼고.

관캐 연애운만 봐준 게 아니다. 내 캐 연애운도 봤다. 정말 어쩌다보니 이렇게 된 거다. 내가 타로를 볼 줄 알기 때문에.



희주는 무자각 관통이고 호연이는 캐관이 난 상태인데 당연히 그렇게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관캐가 내 캐한테 관통난 걸 여실히 드러내는 모습은 점차 내 선후배관에 대한 의지를 무력하게 만들고 있었다. 세션 내내 텐션이 그랬다. 최호연은 여희주를 너무너무 좋아해!

그래. 그냥 모든 걸 놓아주고 훤님께 연애관이든 결혼관이든 하자고 하자. 나만 포기하면 모두가 행복해진다.

근데 이건 좀 너무하지 않나?



까똑!





그렇게 호연이는 내 앤캐가 되었다.
8. 후기의 후기
원래 서두와 마무리가 글에서 제일 어렵다. 어째 후다닥 마무리 된 것 같지만 저기다 무슨 문장을 덧붙여봤자 주저리밖에 안되는 것 같아서 그랬다. 그러니 너그러이 양해해주시라.
후일담 1: 곰주는 세션이 끝나고 어쩐지 성사될 것 같길래 이게 틀리면 어쩌나 싶어 말하지 못했다고 한다.
후일담 2: 산개는 알고 있었다. 맞관을.

우정 출연
퓨님
아렁님
아보카도
귀여우니까 그냥 넣어달라는 사람
엣젠
볕님
낮결
오렝
리스님
지나가는 사람
몽뱀님
그래서 둘이 무슨 관계야 물어본 사람
인절미
엣젠 (중복 출연)
그리고 끝까지 읽어주신
당신
감사합니다. 모두 행복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