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20.09.01 호수빛 관통 후기 2부
  2. 2020.08.31 호수빛 관통 후기 1부
  3. 2020.07.01 퍽이 좋은 연극으로 다시 모시겠습니다

 

 

5. 탈통

 

 

관통 후기라고 해놓고 탈통이 왜 있는가 하면 진짜로 중간에 탈통을 했기 때문이다. 

 

 

마음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나는 상대가 조금이라도 부담을 느낀다 싶으면 빠꾸하는 편이다. 사심이 있을 때에는 더더욱 그렇다. 이게 무슨 말이냐. 쓸데없는 걱정도 엄청 한다는 거다.

 

 

탈통의 이유는 간단했다.

 

그냥 조심스러워 하시는 것 같은데 그게 부담스러워서 선을 그으시는 건 아닐까 했던 거였다. 

 

 

산개: 훤님은 그런 걸로 부담스러워하지 않으신다니까.

지니: 넌 생각이 너무 많아.

나: 

니들이 뭘 알아

 

 

인간의 눈을 가리는 것은 공포다. 나는 합의 앤캐 오너님에게 부담을 드리고 싶지도 않았고 이대로 탈통하면 평범하고 즐겁게 결혼관 연애관을 즐길 수 있는데 마음 같은 걸 가져서 괴롭고 싶지 않았다. 이쯤되면 알겠지만 나는 극도의 안전 지향 주의다. 캐오 분리형 인간이라 나만 사심 없으면 장땡이란 뜻이다. 결국 커뮤의 인간 관계란 사람이 종이 인형을 수단으로 해서 교류하는 게 아닌가. 사람하고 틀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탈통하고 건어물이 됐다.

 

 

로 끝났다면 성사 후기는 올라오지 않았을 것이다.

 

 

Q. 헌정 시나리오는요?

 

 

그래. 헌정 시나리오. 나는 헌정 시나리오를 쓰고 있던 와중이었다. 이미 개요 진상 스토리 얼개와 맵 구상까지 전부 다 해놓은 상태. 하지만 어차피 이 상태로 중간 세이브 된 시나리오가 2n편인 데다 처음엔 공개할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만둬도 상관이 없었다. 관계캐에게 헌정하는 건 처음이라 부담스러워하지 않으실까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솔직해지겠다. 이전에도 관계캐에게 헌정하려는 시나리오를 중간 세이브 해둬놓고 이 시나리오에만 망설인 건 구관캐여서다. 하지만 사람이 한 번 겁을 먹으면 솥뚜껑 보고도 자라인 줄 아는 법 아니겠나.

 

 

하지만 관통난 날 이미 그 주 일요일로 세션 약속을 잡아버린 상태였다.

 

 

Q. 시나리오 완성도 안됐는데 약속을 잡았다고요?

A. 기한 전에 다 쓸 자신이 있었습니다.

 

Q. 탈통했는데도 계속 쓰신 건가요?

A. 시나리오에는 로맨스 요소가 없었습니다…….

 

 

애초부터 소관타 시나리오도 아니었다. 충분히 친구끼리 다녀올 수 있는 시나리오였고 여차하면 초면 AU로도 갈 수 있게 작성한 거여서 로맨스 요소는 사실상 제로에 가까웠다. 고록은 후일담으로 줄 생각이었으니까.

 

 

 

 

 

 

1부에서 호연이가 악몽을 꾼다고 설명했었다. 호연이가 꾸는 악몽은 돌아가신 부모님과 함께 호수에 갔다가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거였다. 행복했던 기억이 함께 하던 사람들을 잃으면서 괴로운 꿈으로 변해버리는 쪽이었다.

 

 

관통 후기 극초반에 관계 돼지라고 한 적이 있다. 로맨스나 성애 요소가 없더라도 오너와 캐 합이 맞으면 미친듯이 관계캐 덕질을 하기 때문에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했다. 그냥 그 시나리오는 어떠한 고난이 있어도 최선을 다해 함께 행복해지자고 작성한 거였으니까.

 

 

 

탈통한 채로 시나리오를 쓰는 와중에도 카톡의 썰과 봇계 애프터는 차곡차곡 이어졌다.

 

 

선배는, 제게 확신을 줄 수 있나요?
질투도 나고요.
이러는데 어떻게 안 설레요.
손 잡고 안 놔줄거니까요.

 

 

Q. 장난하세요? 이미 사귀는 거 아닙니까? 즐커러 규탄한다!

A. 제가 다 설명 드릴 수 있습니다. 선생님. 저는 즐커러가 아닙니다.

 

 

훤님은 앞서 부비자고 하면 쿨하게 부벼주시는 분이라고 말한 적 있다. 그래서 관통과는 별개로 연애관이든 결혼관이든 합앤이든 책임질 상황에서는 책임져주시는 분이다.

 

 

그렇다면 나는? 나도 엇비슷하다. 연애관이나 결혼관 맞짝사랑 등 로맨스나 성애관을 좋아하는 편. 캐오 분리가 명확하기 때문에 오너적으로 선은 분명히 긋지만 캐릭터 간의 사랑은 서사만 맞다면 합의 하에 AU로 먹든 오피셜로 먹든 별 상관이 없는 쪽이었다. 다만 합앤은 오너적으로 맞아야만 하는데 중요한 지점이 있었다.

 

 

나는 호캐든 관캐든 구관캐든 마음이 생길 여지가 있다면 제의를 받아도 절대 합앤을 하지 않는다. 물론 내가 제의하지도 않고. 합앤에게 치여서 고록 판 전적이 있었을만큼 서로 마음의 무게나 색이 다른 걸로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아한다. 나만 진심이지가 되고 싶지 않다는 뜻. 

 

 

 

그리고 그 당시에는 이미 캐끼리 북치고 장구쳐서 결혼하는 게 사실상 오피셜화 된 상황이었다. 말하자면 오너들은 관계로 못 박지 않았는데 캐끼리는 너와 결혼까지 생각했어를 부르고 있었던 거다. 거기다 설레니 마니 하고 있으니 실상 이게 연애나 다름 없었던 건 맞았다. 

 

 

무슨 생각하시는지 안다. 탐라 반응도 여러분이 지금 생각하는 바와 다르지 않았다.

 

 

 

 

나: 아니 사귀는 건 아닌데. 연애관이면 몰라도.

훤님: 연애관 할까요?

 

연애관?

연애관?

연애관?

 

 

 

 

진심 에바였다. 겐도도 없는데 에바에 탄 신지가 되고 싶지 않았다. 구관캐랑 연애관 짰다가 좆되면 보상은 누가 해주는가?

 

 

그래서 카톡으로 찾아갔다. 탐라에서 대놓고 연애관 못하겠다고 말할 수 없었다. 다들 하하처럼 사귀는 거야? 사귀는 거야? 플로우인데 진짜 구관캐였던 나는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 훤님. 저희 관계 연애관 말고 결혼관으로 돌릴 수 있을까요?

 

 

그리고 구구절절 쑈를 한다.

 

 

나: 제가 연애관이 싫은 건 절대 아닌데요. 며칠 전에 관통 났다가 탈통해서요.

연애관 하면 재관통이 날 것 같아서 그래요.

 

훤님: ?ㅁ?

 

나: 부담스러우시면 선후배관으로 돌리셔도 괜찮아요!

연애 감정 없어도 충분히 서로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는 관계니까요.

 

훤님: 그럼 차라리 합앤 하실래요?

호연이가 희주에게 캐관이 난 것 같아서.

 

 

나는 절대로 구관캐와 합앤하고 싶지 않았다

 

 

호연이가 캐관이 났다니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여기서 문제가 있었다. 여희주는 무자각 관통이 난 상태였다. 그러니까 자각이 안 났다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오너님이 아무 생각 없으신 것까진 괜찮았다. 사람이 어떻게 맞관만 나겠는가. 다만 사랑의 짝대기가 꽈배기 상태라는 게 문제였다. 여희주는 원체 거리 두는 게 익숙하고 당연한 친구인데다 스스로의 내면이 단단한 마이웨이였고 로맨스적 감정이 없이도 충분히 호연이를 아꼈기 때문에 자각할 한 방이 없었던 거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는 여희주를 자각시키고 싶지 않았다. 지옥불에 기어들어가고 싶겠는가.

 

 

나: 제가 합앤을 하게 되면 분명 치이게 될 것 같아서 그건 안 될 것 같아요. 제 쪽에서만 진심이 되면 곤란하실 수도 있으니 결혼관이 좋을 것 같아요…….

 

 

Q. 결혼관을 하면 안 치입니까?

A. 세상에는 로맨스 감정 없이도 행복하게 결혼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으니까요.

 

 

그래서 결혼관을 하기로 합의했다. 탐라 사람들이 다 연애하는 줄 알길래 결혼관 했다고 언급도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갑자기 죽고 싶은 거다.

 

 

 

그렇다. 재관통이 났다.

 

 

6. 재관통

 

 

 

 

Q. 왜 재관통이 나셨나요?

A. 그걸 알면 재관통이 안 났을 겁니다.

 

 

그리고 재관통 자각을 하자마자 훤님에게 카톡이 왔다.

 

 

훤님: 좀 생각해봤는데요… 호연이가 결혼하면 지금보다 더 적극적이게 되는데 연애관이랑 차이가 없을 것 같아요.

그래도 괜찮으실까요? 부담스럽거나 곤란해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산 넘어 산이라더니

 

 

여러모로 망한 상황이었다. 훤님은 어쩔 줄 몰라 하시는 것 같고 나는 나대로 재관통이 났으며 호연이는 더 적극적이 된단다. 나는 이걸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여기서 괜찮습니다는 절대 할 수 없었고 안 괜찮다고 하면 그건 또 뭐라고 구구절절 덧붙여야 한단 말인가?

 

그리고 우리는 그 주 일요일에 세션을 앞둔 상황이었고 이미 목요일이었다. 

 

결국 나는 관밍이라는 패닉 버튼을 누르게 된다. 그냥 다 까버리고 하얗게 불타버리자는 해탈이었다.

 

 

나: 제가 일단 재관통이 난 상태예요. 이걸 말씀드리는 이유는 저희 일요일 세션이 있어서고

이 점이 불편하시면 취소하셔도 괜찮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그런 거고요.

괜찮으시다면 세션을 다녀온 이후 관계 정리 다시 해도 될까요?

 

 

답장은 한 시간 뒤에 왔다.

 

 

훤님: 어떻게 말해야할지 진짜 고민하다 왔는데요. 저 진짜 희주 좋아하거든요.

전혀 안 불편하니까 세션 다녀온 이후에 다시 관계 정리해요. 

 

 

이 즈음 이미 나는 도망가고 싶어진 상태였다.

 

 

 

 

 

봇계 애프터와 장문 썰이 쌓여 있었다. 재관통 난 상태에서 이걸 이으려니 돌아버리겠는 거다. 나만 진심인 상태에서 로맨스 텐션이 다분한 결혼 동거 썰을 풀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세션 전까지 썰과 애프터를 싹 끊어 버리면 이건 이거대로 예의가 아니었고 불편하다 오해하실까봐 심란했다. 현생과 심란함으로 늦어지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아예 토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지니: 넌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해? 그냥 편하게 합앤 하지.

푸딩님: 맞아요~. 전 합앤 했잖아요.

(↑이 사람은 관캐와 썰 / 세션을 지지고 볶다가 결국 합앤 쟁취했다.)

 

나: 난 그게 안 된다고!

 

 

결론 1: 썰에서 로맨스 텐션이나 성애적으로 느껴질 부분을 빼자.

결론 2: 서로가 소중한 원앤온리 위주로 방향을 틀어서 풀자.

결론 3: 봇계 애프터도 2번과 같이 풀되 자각은 내지 않도록 유의하자.

결론 4: 세션 다녀와서 행복하게 서로를 아끼는 친밀한 선후배관이 되자고 하자.

 

 

 

개비스콘을 먹은 기분으로 시나리오를 마무리 해 완성했다. 훤님이 배포 편하게 해달라고 하셔서 세션 끝나고 배포하기로 얘기도 했다. 브금 리스트도 쭉 정했고 세션 준비도 완료했다. 이제 정말 다 끝나 미뤄뒀던 현생을 치우는 와중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뉴짤이 오기 시작한 거다.

 

 

 

 

 

심지어 이건 결혼 상정 뉴짤이었다

 

썰도 한번에 이만큼씩 주고 받고 있었는데

 

 

 

 

시나리오&세션 준비를 한다고 미뤄뒀던 현생을 치우느라 썰답이 늦어졌더니 로그에 이어지는 썰을 새로 또 풀게 된 거다. 세션 직전까지! 게다가 봇계 애프터도 이어지고 있었다! 이 모든 게 나흘도 채 안되어서!

 

 

 

 

이쯤 되면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된다. 이 사람은 나에게 왜 이러는 것인가? 나는 디코방의 까악새였다. 뉴짤과 뉴썰과 봇계 답멘을 볼 때마다 나라 잃은 사람처럼 괴로워했다. 

 

 

나: 도대체 왜 이러시는 걸까?

 

상황 1: 내가 현생을 치우느라 답이 늦어졌다.

상황 2: 훤님은 내가 관통난 걸 알고 계시고

상황 3: 세션이 끝난 다음 관계 정리를 이야기 하기로 했다.

상황 4: 훤님은 관통은 나지 않으셨지만 이 관계를 굉장히 아끼신다.

 

합리적 추론: 좋아하는 관계캐를 잃으실까봐 불안하신 거다.

 

 

산개: 유일 찐앤오인 나한테도 저렇게까지 안 해. 치인 거라니까.

나:

나 이미 관밍했다고 차이고 왔다고 확씨 진짜 이걸

 

그 와중에 친구들이 타로와 오라클도 봐줬다.

 

 

나: 세션 끝나고 선후배관으로 돌리자고 하려는데 동거 결혼 짤 받았어. 이거 어떻게 하냐.

지니/곰주: 관계 애매해진다고 뜨는데. 여러모로 곤란해질 것 같으니까 그러지 마라.

 

 

나: 세션 끝나고 어떻게 될까.

곰주: …….

나: 뭔데?

곰주: 아무튼 갔다 와봐.

나: 뭐야?

곰주: 그냥 묻지 말고 갔다 와보라고.

 

 

7. 세션

 

 

그래서 세션을 갔다. 나는 원래 하루 평균 세션 가능 시간이 2시간 30분에서 3시간 가량이다. 중간에 30분 가량 쉰다고 해도 끽해야 5시간 하는 정도가 최선. 그래서 호연이와의 세션도 3시간으로 계산해 3일을 잡아 둔 상태였다. 

 

그런데 너무 재밌는 거다. 그래서 오버 페이스로 달렸다. 나중에 세 보니 10시간을 풀로 땡겨 하루 안에 세션을 끝내버렸더라.

 

 

최고!

 

 

아무튼 역경과 고난이 있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정말 즐겁고 재미있었다. 하나만 빼고.

 

 

 

관캐 연애운만 봐준 게 아니다. 내 캐 연애운도 봤다. 정말 어쩌다보니 이렇게 된 거다. 내가 타로를 볼 줄 알기 때문에.

 

 

제가 관통난 거 아시잖아요. 왜 이러세요?

 

 

희주는 무자각 관통이고 호연이는 캐관이 난 상태인데 당연히 그렇게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관캐가 내 캐한테 관통난 걸 여실히 드러내는 모습은 점차 내 선후배관에 대한 의지를 무력하게 만들고 있었다. 세션 내내 텐션이 그랬다. 최호연은 여희주를 너무너무 좋아해!

 

 

코가 꿰였구나 나는……. 이제 빼도 박도 못하는구나…….

 

 

그래. 그냥 모든 걸 놓아주고 훤님께 연애관이든 결혼관이든 하자고 하자. 나만 포기하면 모두가 행복해진다. 

 

 

 

 

근데 이건 좀 너무하지 않나?

 

 

 

 

 

 

 

까똑!

 

 

 

 

 

 

 

 

 

 

 

그렇게 호연이는 내 앤캐가 되었다.

 

 

 

8. 후기의 후기

 

 

원래 서두와 마무리가 글에서 제일 어렵다. 어째 후다닥 마무리 된 것 같지만 저기다 무슨 문장을 덧붙여봤자 주저리밖에 안되는 것 같아서 그랬다. 그러니 너그러이 양해해주시라. 

 

 

후일담 1: 곰주는 세션이 끝나고 어쩐지 성사될 것 같길래 이게 틀리면 어쩌나 싶어 말하지 못했다고 한다.

후일담 2: 산개는 알고 있었다. 맞관을.

이 자식 너무 자신있게 말하길래 개빡쳤는데 근거있는 소신 발언이었던 거다.

 

우정 출연

 

퓨님

아렁님

아보카도

 

귀여우니까 그냥 넣어달라는 사람

 

엣젠

볕님

낮결

오렝

리스님

 

지나가는 사람

 

몽뱀님

 

그래서 둘이 무슨 관계야 물어본 사람

 

인절미

엣젠 (중복 출연)

 

 

그리고 끝까지 읽어주신

당신

 

 

 

감사합니다. 모두 행복하세요!

 

 

Posted by Anla :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관통 후기를 써본다. 뭘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 주기적으로 남의 관통 후기를 읽어 로맨스 게이지 채우는 게 삶의 낙인 주제에 막상 본인 일이 되니 이렇게나 무력해진다. 좌우간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어봐야 한다. 이건 겉절이 김장에 대한 이야기다.

 

 

 

 

 

왜 겉절이냐. 그건 내 관통의 조건 요소가 묵은지이기 때문이다.

 

 

 

 

 

나는 관통 자각을 상당히 늦게 하는 편이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나에게도 러닝 중 관통과 성사라는 역사가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냥 그렇게 됐다. 아예 내 밥상 위에 올라온 김치(합의 앤캐-같이 커뮤 갔다왔을 경우 한정)가 되거나 최소 1년 최장 4년을 찍어야 스스로 이 감정은 관통? 하고 미간을 짚는 커뮤러가 되어 버린 것이다. 특히 내가 여캐일 경우엔 더더욱.

 

말하자면 이 오너님과 오래 오래 놀 수 있겠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어야 치인다는 소리다. 오너가 잘 맞는지 아닌지, 취향은 맞는지, 챙기는 텀이나 텐션은 비슷한지, 방식은 어떤지 오래 알아가며 자연스럽게 맞춰지면 어느 순간 자각의 타이밍이 왔다.

 

원래 배부를 때 먹어도 자꾸 먹고 싶어야 진짜 맛있는 거 아니겠나. 매일 매일 먹는데도 내일 또 먹는 게 당연해지면 갑자기 관통인 줄 알게 되어버리는 법이다.

 

 

사실 무슨 관계든 주기만 하면 매일 입에 넣는 관계 돼지다.

 

 

 

구구절절 서론이 길었다. 앤캐부터 보여주고 싶지만 그래도 순서를 지켜서 커뮤 소개와 내 캐 소개부터 하겠다.

 

 

1. 러닝 전

 

 

 

축시. 한국 고등학교 배경 괴담커다.

 

나는 여름이 되면 한번씩 괴담커를 가야 한다. 공포 영화나 괴담커가 왜 여름에 흥하겠는가. 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서 그렇다. 내 탐라는 내가 구성한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으니 취향도 거기서 거기라 누군가 한 명은 이 시즌마다 괴담 커뮤를 열거나 괴담커 영업을 해온다.

 

 

나: 아 커뮤 가고 싶다. 지금 아니면 못 가는데.

푸딩님: 축시 가실래요? 저 남캐 내려고요.

 

 

푸딩님. 이 사람을 기억해두는 게 좋다. 망사랑의 대가로 이 커뮤 1호 커플이자 자신의 1호 커플을 쟁취한 사람이다. 더불어 나와는 서로의 괴로움이 자신의 즐거움이었던 사이다.

 

 

여간 나는 축시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건 내 에어 부랄인 산개가 스탭으로 참여한 커뮤였기 때문이다. 열받지만 이 인간도 잘 기억해두면 좋다.

 

 

커뮤가 정해지고나니 캐내림이 벼락같이 왔다. 원래도 짜뒀던 캐긴 했지만 축시에 딱 맞는 설정이 정수리에 꽂혔던 거다. 

 

그래서 나온 캐가 얘다. 여희주. 2학년 2반 가챠 방송 스트리머. 

 

 

 

 

신청서를 웃기게 써서 붙었다는 후일담을 들었는데 아무래도 스트리머 닉네임이 <가챠뽑기이>라서 그랬던 것 같다. 

 

 

이건 별로 중요하지 않고… 이제 드디어 앤캐도 소개할 수 있다. 살면서 흑발 벽안을 내보기만 했지 치여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정말 어떻게 이럴수가……. 우리집 까만 톡구를 소개한다.

 

 

최고!

 

호연이가 관캐 아닌 앤캐라니? 사실 아직도 인지부조화가 온다.

 

 

중복 실수가 아니다

 

 

앤캐니까 학생증도 자랑하겠다. 사육장에서 토끼 담당을 하고 있는데 너무너무 귀여운 설정이 아닌가. 사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건 염세순종 키워드다. 이건 두고두고 내가 정수리를 터뜨리는 요인이 된다.

 

 

사실 나는 호연이의 뒷사람을 알고 있었다. 1000일 넘은 합의 앤캐 오너님인 훤님.

 

 

Q: 결국 그럼 앤오님이라 그렇게 된 거 아닙니까?

A: 

 

 

 

내 탐라에서 절대 치이면 안된다고 말하는 몇 사람이 있다. 훤님은 그 중 한 명. 바로

 

 

커생 통틀어 딱 >>>2번<<< 치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당시 자컾 중에 찐컾은 딱 한 컾 밖에 없었으며 그나마도 4년 전인 사람이다. 

 

커뮤가 끝나면 캐입이 튕긴다며 봇계 애프터는 하지 않으시고

본인 캐 그림은 그리지 않으시며 (재업도 안 하심)

썰도 풀다가 바쁘고 기력 떨어져서 오래 하기 힘들어 하시는 터라

조용히 커뮤 다녀와서 조용히 사라지시는 게 대부분.

 

부비자고 하면 그래요~ 하고 쿨하게 부벼주시지만 이 사람을 치는 건 극악 난이도다 못해 '가능하긴 한 거냐고 어이' 수준이었다. 나와의 자컾도 어쩌다보니 남는 캐끼리 부볐다가 합앤이 된 쪽.

 

 

이런 훤님에게 치일 앞날도 모르고 한 생각은 다음과 같다.

 

 

'에엥… 지인 한 명 더 붙었네……. 잘생겼구만…….'

 

 

멍청하게 커뮤 MPC인 줄도 모르고……. 하지만 모르는 게 당연했다. 운영진이 본인들 커뮤라고 홍보도 안 했고 캐숨에 MPC 비공개였는데 무슨 재간으로 알겠나. 산개가 말해주고서야 알았다. 제기랄.

 

게다가 나는 과거 지인플에 크게 데여 역지인플이 심한 편이라 당연히 무관으로 끝나겠거니 했다. 대화는 하고 놀아도 절대 깊관은 되지 않겠구나 하는 안일한 생각.

 

 

그건 정말로 안일한 생각이었다.

 

 

 

2. 러닝

 

어쨌거나 합격은 했고 러닝을 할 차례인데… 커뮤 극초반에는 대화를 아예 안 했다. 왜냐면 내가 지인들에게 선멘을 걸지 않기 때문이다. 원래도 기력이 없어서 초반에는 선멘을 잘 못 거는 편인데 지인들은 지인플로 보일까봐 선멘을 걸지 않았다. 훤님은 훤님대로 운영에 바빴다. 그럼 어떻게 대화를 시작했느냐…….

 

 

조사 시리 커의 묘미는 팀 짜기다. 

 

그리고 나는 커뮤 열활맨. 어지간해서는 트윗수 5위 안에서 내려오지 않으며 조사에 진심이다. 팀 짜기와 조사 취합도 열심히 하는 타입. 그렇다보니 자리에 없는 친구들은 찾아가서 물어봤다.

 

바로 이렇게. ↓

 

 

 

…원래 저런 애다. 성격 서글서글하고 안 좋은 일은 빨리 해치워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라 그렇다. 거기다 얌전하고 귀여운 토끼 타입 친구들을 엄청 좋아하는 편이라 커뮤 내내 뽀뽀하고 껴안고 다녔다. 그걸로 본인의 멘탈 게이지를 채운 거다.

 

 

 

변명 같지만 진짜 이런 애다

 

 

좌우지간 별 일 없이 지나가나 했는데 

 

 

 

 

 

얼라리. 안 피하는 거다. 호연이가 순종적인 타입이긴 했지만?

 

 

 

 

 

과하게 귀여운 거다. 이거 참. 이렇게 귀여우면 예뻐해달라는 거지. 요렇게 잔망스러운 텐션은 러닝 내내 쭉 이어진다.

 

하지만 나는 별 생각 없긴 했다. 원래 여희주는 애들과 스킨십이 엄청나게 많은 편이고 거짓말을 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관계를 무겁게 두는 애가 아니었다. 깔끔하고 산뜻한 게 취향이라 일정량의 거리를 두고 서로 좋게 좋게만 지내는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호연이도 마찬가지. 타인에게 큰 관심이 없어 늘 거리를 두고 자기의 깊은 마음을 주고 싶지 않아했다. 그러다 잃게 되면 너무 무섭고 아프니까.

 

 

그래서 두 사람의 대화는 전반적으로 어딜 놀러가자거나 가벼운 대화 핑퐁이 대부분이었다. 

 

 

 

 

 

 

러닝계에 이 정도 캡쳐를 올리긴 했지만 그냥 귀여워서 덕캐 캡쳐한 거였다. 진짜 별 생각 없었다. 제발 저리는 것처럼 계속 강조하는 것 같지만 정말 별 생각 없었다.

 

그런데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타임라인에 치인트 유정이 설이의 후배라면을 전제로 한 만화가 들어온 거다. 아주 잔망쟁이같은. 

 

 

 

내 최애컾은 정설이다

 

그리고 나는 반존대에 약하다

 

 

이쯤되면 러닝계가 왜 이름이 쿠쿠하세요인지 설명할 때가 온 것 같다. 원래 러닝계가 아니고 관통계였다. 나도 러닝 중 관통이 날 수 있다는 어줍잖은 목표를 세워두고 만들었는데 지인들이 개처럼 비웃는 바람에 씩씩거리며 딱 봐라 나도 겉절이 할 수 있다 해가지고 밥솥의 명가 쿠쿠가 된 것이다. 

 

그리고 진짜 겉절이가 되고 만다

 

 

가히 교만하기 짝이 없는 네이밍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은 이름 따라 간다는 점을 간과하다니 이렇게나 어리석을 수가 없다. 

 

 

치이게 된다

 

지면 상 굳이 첨부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 생략했지만 러닝계에서 오만 부정은 다 했다. 사실 그 당시엔 정말 단순한 부정은 아니었다. 

 

 

1. 상대 미니미 키링 맞추기로 했다.

2. 매일 밤에 전화해서 재워주기로 했다. (호연이가 불면증이라 사람 목소리가 있어야 잠든다.)

3. 책갈피 만들어주기로 했다.

4. 서로 잠 안오면 바디필로우로 쓰기로 했다.

5. 서로 안 해본 상대 취향 머리 스타일을 해서 보여주기로 했다.

 

 

이런 걸 하기로 했지만 사실 이 정도는 충분히 친구끼리도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문제는 태도와 텐션의 차이일 뿐이지. 그리고 다른 친구들과 같이 놀이 공원에 놀러 간다던가, 맛있는 걸 먹으러 간다던가, 원하는 취향 머리 해주기, 옆에서 자장가 불러주면서 재워주기 등 많은 약속을 했다. 아무래도 조사 시리커다보니 애들끼리 여길 나가면 뭘 하자는 약속도 많고 분위기가 포카포카 으쌰으쌰인 편이었다. 변명같지만 진짜다. 오히려 로그는 다른 친구들과 훨씬 많이 주고 받았다. 

 

 

하지만 내 지인들은 나를 너무 오래 봤다. 사람이 사람을 3년쯤 보면 학교 하나를 함께 졸업하게 되는 셈이다. 뭐에 치이고 뭘 좋아하고 어떤 관계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고 봐도 좋다. 사실 나는 모든 커뮤에 갈 때마다 관계 부자가 되어 돌아오는 편이고 로맨스나 성애관도 즐겨 만드는 편이기에 다들 그런가 보다 하는 편이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지금껏 관통 역사를 봐왔던 인간들이 뭔가 평소와 다른 낌새를 맡고 뛰어온 것이다.

 

 

 

진짜 이 인간들을 너무 오래 봤다

 

하지만 말이다. 인간적으로 

 

 

좀 너무 하지 않은가?

 

 

 

선조들의 말은 틀린 법이 없다.

 

대화 타래는 무려 9개까지 늘어났다. 다행히 멘션은 한 개씩 뿐이었고 가벼운 내용이 대부분이었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약속과 둘이서 처음 해보는 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1. 애들과 다 함께 시골에 놀러 가기

2. 그 이전에 둘이서 시골 답사 여행 가기

3. 머리 악세사리 선물 받으면 둘이서 하루종일 같이 놀기

 

 

앞서 호연이의 키워드에 염세가 있다고 말했었다. 호연이는 친부모님을 사고로 잃고 마음을 닫은 캐릭터였는데 이 이후로 친부모님 관련 악몽을 꾸곤 했다. 때문에 불면증이 있었고 사람의 목소리를 들어야 그나마 완화되는 정도였다. 이 비설 때문에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었고 자신에게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도 예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점차로 애가 변하는 거다.

 

 

 

 

 

이게 엔딩 직전 마지막 대화다. 슬슬 이 즈음엔 잠잠해져서 깊관 쌓았다고 좋아했다. 그렇다면……

 

 

 

 

 

 

미리 말해두지만 여희주는 굉장한 멘탈 건강맨이다. 낡은 거뮤러인 탓에 심각한 비설을 넣어주고 싶지 않았고 애초에 갈리는 비설은 취향도 아니었기에 대한민국 보수적인 집안의 장녀라는 요소 말고는 아무것도 넣어주지 않았다. 원체 기본 성격도 마이웨이인 터라 이게 별 타격도 안됐다.

 

 

깨끗해요 (멘탈)

 

 

축시는 정신력이 낮아질 때마다 캐릭터들에게 환청을 보게 하거나 환청을 듣도록 했고, 귀신으로 하여금 비설을 털게 만들어서 멘탈을 흔들곤 했다. 그래서 힘들어 하는 친구가 많았는데 희주는 길어지는 상황에 지치고 원래의 세계를 그리워하는 것 빼면 크게 타격 받을 요소가 없었다. 장녀 요소가 있어 딱히 타인에게 기대고 싶어하지도 않았으니 다른 친구들을 으쌰으쌰 하거나 북돋아주고 보듬어주는 역할이 되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호연이도 그 중 하나였다.

 

 

어쨌거나 아무튼 그렇게 엔딩이 났다.

 

 

그래서 그렇게 끝날 줄로만 알았다. 엔딩 날 때까지 별다른 굴곡 없이 포카포카한 관계였겠다, 훤님이 평소 엔딩 이후 어떤지도 알고 있었으니 별 생각이 없었다는 소리다.

 

 

그래놓고……

 

 

 

 

물이 끓고 있는 줄 몰랐다. 그럼 언제 알았느냐. 엔딩 바로 이틀 뒤에.

 

 

 

 

 

3. 엔딩 이후 - 호통기

 

스스로 불러온 재앙이라는 말이 있다. 뇌내망상으로 해결해도 될걸 꼭 찍어 먹어보고 와씨 이거 맛있네 감탄하다 이제 없어요 하면 솜사탕 씻은 너구리가 되어버리는 사람이 나다. 맛있는 썰은 공식으로 만들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요 오타쿠 마음이 아니겠는가. 남이 푼 썰도 맛있는데 내 취향으로 푼 썰은 까먹고 다시 보면 진미 중의 진미다. 

 

 

이 말을 왜 하는고 하면 호연이와 희주 타로를 봤기 때문이다. 누가? 내가. 

 

 

……내가 말이다. 내 손으로…….

 

 

엔딩 다음 날이 무슨 날이었는고 하니 바로 ㅁㅁ팟 정모였다. 원래 자주 모이던 실친급 에어 부랄들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엔딩 다음 날 만나게 된 거였다. 사실 (곧 관오님이 되실) 훤님은 이 모임에 아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해당 팟 인원은 아니었기 때문에 만날 예정이 아니었다.

 

 

푸딩님: 훤님도 오실래요?

 

 

그 제안에 훤님도 오시게 된다. 맛있는 밥을 먹고 다 같이 룸카페에 모여 놀았는데 (방역 수칙을 준수하였습니다.) 우리의 불문율 중 하나는 모였을 때 타로 보기다. 내가 타로 리더기 때문에 다들 으레 가지고 왔겠거니 하며 나도 으레 봐주겠거니 하고 가져온다.

 

그 날도 평소처럼 꺼냈다. 기력을 빨대로 뽑아 먹힐 때까지 타로를 봤었다. 푸딩님은 이 당시 관통이 아니라고 하시면서도 머리를 부여잡고 계셨고 나는 즐거웠다. 어쩌면 다들 망한 사랑만 그렇게 주워와서 하는 건지……. 

 

 

하지만 내가 그 인간들의 친구라는 건 나도 그 짝이라는 얘기다. 

 

 

나: 호연이랑 희주도 뭐 봐볼까요.

훤님: 그럴까요?

 

정말 왜 그랬을까?

 

 

누군지 기억나지 않는 모임원: 재밌겠다. 관통 나는지 한번 봐봐.

 

 

 

 

원래 모이면 광기가 생긴다. 그래서 봤다.

 

결과 1. 내가 먼저 관통난다.

결과 2. 훤님은 늦자각해서 후회공이 된다.

결과 3. 캐끼리 결혼해서 알콩달콩 산다.

결과 4. 호연이가 안정되어서 들이박으면 희주가 어어어 한다.

 

 

 

 

별로 알고 싶지 않았다. 뭔 소리야 알려고 봤으면서 싶겠지만 물론 보기 전엔 알고 싶었다. 하지만 보고 나니 별로 알고 싶지 않았다. 사람 마음이 간사해서 지가 까놓고 아니 씨발 싶어지면 이런 건 알고 싶지 않았어 하는 법이다.

 

 

말하는대로 라는 노래가 있다. 말에는 힘이 있다는 문구도 아주 유명하다. 뱉기 전까지는 둥둥 떠다니던 말들이 입 밖으로 나와 형태를 갖추게 되면 가끔 진짜 그렇게 되어버리거나 사람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하지만 나는 정말로 진심으로 진짜로 절대 결코 치이고 싶지 않았다. 대체 커생 두 번 치인 사람을 어떻게 치라는 말인가? 심지어 당시에는 한 번 치인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대로 되면 마음이 아니다. 그 날 밤 나는 호통 자각을 하게 된다. 

 

 

 

 

 

그 날 만난 김에 이런 썰을 풀었기 때문이다.

 

 

 

지금 보니 아무리 봐도 관통 스탭 차차차다. 하지만 그 때 당시엔 정말로 호통이었다. 나는 관통나면 고록파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 고민이 깊고 시간이 오래 소요되기는 하지만 관통 자각을 하면 스트레스 감당을 하고 싶지 않아 차이든 말든 곧바로 고록을 파거나 관밍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걸 받는다.

 

 

 

 

여기서 다시 떠올리자면

 

 

훤님은 엔딩 후 그림을 안 그리시는 분이다. 대개 커미션을 가져오시며 오죽하면 훤님의 유일한 찐앤오인 산개도 훤님 그림은 2번 받아봤다고 할 정도.

 

그런데 풀컬러 2인 짤이 온 거다.

 

 

게다가 놀랍게도 봇계 애프터 답도 왔다. 

 

 

사실 나는 봇계 애프터를 안 하는 사람이다. 러닝에 모든 힘을 쏟기 때문에 엔딩이 나면 칼 같이 로그아웃하며 봇계 애프터는 힘들다고 못 박는다. 하지만 사람이 사랑을 하면 달라진다고 호캐랑 대화하고 싶다며 봇계 답멘을 쭉 달았더니 8개 모두 답멘이 와버린 거다. 

 

 

관통나기 싫다고 해놓고 착실하게 관통으로 가는 레드 카펫을 밟고 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나는 신나게 두들겨 맞기 시작한다.

 

 

마음 잘 주고 있어요?
휘말려서 싫지 않잖아요.
선배면 돼요 저는
설레요.
선배만 안 간다고 하면 되겠다, 그쵸.
나를 생각해주세요.

 

 

여기서만 맞고 있었던 게 아니다. 썰로도 맞았다.

 

 

일상이나 질투하는 게 똑같다 진짜

 

 

제일 돌아버렸던 건 1인 운송법 썰이었다. 여희주는 168cm로 키가 작지 않은 편인데 그래서 자신을 들어 올리는 거에 꽤 로망이 있다고 러닝 중에 언급한 적이 있었다. 덕분에 키 큰 친구가 공주님 안기를 해줘서 엄청 신나한 적이 있었는데 자꾸 계속 이 썰을 푸시는 거다. 심지어 동거 썰 풀 땐 아예 집에서 안아 들고서 다닌다고 하셨다.

 

 

 

 

정말 왜 이러시냐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 

 

 

 

 

 

그러던 와중 이 곡을 듣게 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Nt8Ec7sS6Oc

 

 

 

호연이가 노래를 듣고 싶다고 해서 이 곡 링크를 줬었는데 가사가 너무 잘 어울렸다. 나는 곡을 하나 정하면 며칠 동안 반복 재생하는 버릇이 있는데 아무 생각 없이 이걸 이틀 내내 들었다. 그러다 정수리에 벼락이 꽂혔다.

 

 

4. 엔딩 이후 - 관통기

 

 

 

나: 나 진짜 치였나보다.

곰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 시발

 

 

친구라고 있는 게 1분 동안 쉬지 않고 웃기만 했다. 

 

 

 

 

그리고 탐라도 신났다.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치이면 고록을 파야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고록을 파기로 결정했다. 비공개 타이만 시나리오를 써서.

 

 

 

 

사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시나리오 자체가 고록이라는 뜻은 당연히 아니다. 세션이 끝나면 후일담으로 고백 로그를 줄 작정이었다.

 

 

 

 

여하간 자각과 동시에 헌정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위에서 1분 동안 웃기만 하던 곰주가 세션 카드를 제작해주었다. 사랑해!

 

 

그리고 관통 자각 하루 만에 탈통하게 된다. 

 

 

 

2부에서 뵙겠습니다.

 

 

Posted by Anla :

이따금 에이프릴 풀 할로우웨이는 무대 위 삶에 대해 떠올린다. 오랜만에 틀어보는 한여름밤의 꿈이었다. 흑백, 조잡한 의상과 과장된 제스처, 지금의 기준으로는 세련되었다고 할 수 없는 그 당시의 최신 기술들. 그녀의 아버지는 1935년도가 낳은 이 유산을 보곤 배우의 길에 들어섰다. 이에 대한 에이프릴의 감상은 간단했다. 지루해. 무감한 관객의 시선을 받으면서도 모니터 안의 배우들은 열연했다.

 

취향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말을 떼기도 전 할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아버지가 나온 영화들을 보았다. 아버지는 조연이었고 어머니 역시 단역과 조연을 오갔다. 에이프릴은 주연의 대사보다 조연의 행동에 시선을 주고 단역이 나오는 횟수를 세었다. 영화의 대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읊을 지경이 되면 종착지는 이런 방식의 감상이 되곤 했다.

 

 

-그래! 네가 달빛을 받으며 내 딸 창가에서 달콤한 사랑의 노래를 불렀잖아!

 

 

지루해진 에이프릴은 영화의 아무 곳이나 눌렀다. 마침 흘러나온 대사에 눈썹이 슬쩍 들려 올라갔다. 저 장면을 볼 적마다 괜한 웃음이 났다. 딸이 사위로 원치 않는 남자를 사랑한다며 공작에게 쫓아간 것부터가 희극의 요소에 충실했다. 공연히 딸의 연인을 책망하는 모습은 떼쓴다고 밖엔 할 말이 없었다. 에이프릴에게는 아버지가 살아 있었더라면 틀림없이 저 장면을 따라하며 어머니와 키득댔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존재하지 않는 부모님과의 유년을 상상할 때가 있다. 일종의 버릇이었다.

 

상상은 구체화되면서 극의 형태를 띈다. 눈을 감지 않아도 선명했다. 단란한 가족의 모습. 대사를 따라하며 저를 안아올리는 어머니와 카세트 테이프를 틀고 그 앞에서 춤을 추는 아버지. 특별한 말을 하지 않아도 모든 말이 농담인 것처럼 튀어나오는 웃음. 완두콩을 편식했다는 이유로, 맨발로 계단을 내려왔다는 이유로, 소파에서 방방 뛰었다는 이유로 뺨을 꽉 잡고서 웃기지도 않는 겁을 주는 부모님. 핫도그와 츄러스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을 때 한 개씩 사서 한 입씩 나누어 먹는 나들이.

 

 

에이프릴은 영화를 틀어둔 채로 희곡집을 뒤적였다. 확실히 제 취향은 이 쪽이었다. 좀 더 연극적이고, 좀 더 비현실적이고… 그러니까 요즘 대체 누가 이런 식으로 말한단 말인가. 도무지 현실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빅토리안 시대의 어휘 사용법! 단 한 줄의 대사만으로도 일상을 무대화시키는 마법을 에이프릴은 사랑했다. 열일곱 살까지 배운 마법보다도 더. 

 

[자아, 꽃을 가져오세요. 고래가 3마일을 헤엄치기도 전에.]

 

영화에서는 이 대사를 그대로 스킵했다. 에이프릴은 그게 불만이었다. 그럼에도 제가 논할 문제는 아니었으므로 활자를 손 끝으로 더듬는 것으로만 만족했다. 이 오래된 연극은 생각보다 학생들의 손에서 자주 재탄생되었다. 그녀는 배우의 경력과, 나이와, 성별과 극단을 불문하고 한여름밤의 꿈을 보러다니곤 했었다. 어느 때에는 하이스쿨 뮤지컬처럼 지대한 각색이 들어갔고, 어느 때에는 그 시절과 다를 바 없는 정극이 올라갔다. 어느 날 할아버지는 에이프릴을 잡고 물었다.

 

-엘로이즈. 네 부모님 생각이 나서 그러는 거냐.

 

에이프릴은 단언했다. 

 

-아뇨?

 

 

희곡집을 덮고 창을 열어 테라스로 나간다. 난간에 기댄 채로 정원을 내려다보자 바람이 불어 수국이 흔들렸다. 작은 가로등의 빛을 받아 남청색 수국의 물결이 파도치는 게 선명히도 보였다. 에이프릴은 상념에 잠겼다. 제가 퇴근을 일찍 하고, 러디가 늦을 무렵이면 고요한 적막이 찾아든다. 그녀는 굳이 이 시간을 소리로 채우지 않았다. 하면 떠밀려오는 것은 기억과 생각이다.

 

에이프릴 풀 할로우웨이에게는 꽤 많은 일이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겪지 않을 아주 이상한 나날들이었다. 호그와트에 간 것부터가 그렇다. 더 거슬러 가면 자동차 사고에서 죽지 않고 말짱하게 살아 남은 것부터 세어야겠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이니 제외. 대개의 사람은 배우지 않을 주문을 읊고, 지휘봉 같은 지팡이를 휘두르며, 쥐를 찻잔으로 바꾸는 걸 배웠다. 사실 거기서 끝났다면 좋았겠지만 뱀 머리를 치려다 독에 물려 죽지를 않나, 온갖 사고란 사고에는 다 휘말려 난데없이 눈 뜨는 클리셰만도 한 손으로 세기 어려웠다.

 

자꾸만 현실감이 희미해졌다. 숨 쉬고 말하고 웃는 것들은 무대에서의 잠깐, 어떤 연극처럼 순간에 불과한 것 같이 여겨졌다. 수국 정원을 남겨두고 가꾸는 건 죽었던 과거를 잊지 않음과 동시에 살아 돌아왔음을 자각하는 용도였다. 그녀는 자주 자신을 잃어버렸다. 타의에 의해서.

 

자아가 약하느냐 묻는다면 질 나쁜 농담을 넘어 헛소리에 불과할 터였다. 에이프릴은 자신이 하는 행동과 생각과 감정을 건조하게 바라보곤 했다. 그저 많은 부분이 무뎌지고 있었다. 애초부터 엘로이즈도 에이프릴도 가짜에 불과했다. 어느 쪽도 제 본 모습일 수는 없었다.

 

그렇지. 에이프릴이든 엘로이즈든 결국 무대 위의 인간일 뿐이다.

 

 

문득 그녀는 석조 유적지 위로 쏟아지던 빛 물결에 대해 떠올렸다. 수국 위로 등의 불빛이 산란하는 탓이다. 농담처럼 나누던 동화의 구절이 흩어졌다. 태양을 굳힌 보석과 달빛을 굳힌 보석을 구하려다 실패한 연인에게 자신은 답한다.

 

오, 이런. 태양을 덧바른 머리칼과 달빛을 얼린 눈. 러디, 그건 바로 너였어.

 

 

오베론이 퍽에게 팬지 꽃을 가져오라고 한 이유는 티타니아가 눈 뜨자마자 처음 만난 사람을 사랑하도록 만들기 위함이다. 에이프릴은 놀랍게도 팬지 꽃의 즙이 한 병 있었다. 돈이면 뭔들 구할 수 없겠는가. 이유도 단순했다. 좋아하는 극에 나온 상징물이니까. 그 날고 긴다는 마법사들도 홀리게 만드는 약은 만들었으되 진정한 사랑을 느끼게 할 수는 없었다. 팬지 꽃의 즙은 약효는 없어도 그와 비슷한 물건이었다. 이따금 그녀는 러디의 눈 위로 보라색 꽃물을 바르는 상상을 했다. 

 

그리곤 이내 그만두었다. 그를 배역으로 남겨두는 일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언제부터였을까? 호텔 그 침대에서 러디어드가 청회색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을 때.  제가 계속 사라지면서부터 저보다 더 겁을 먹는 얼굴을 보였을 때. 손으로 그림자 연극을 하고, 발치에 앉아 울먹였을 때. Virtual에는 '사실상의'와 '가상의'란 양가적 뜻이 있다는 말을 해주었을 때.

 

 

그리고 전화가 걸려 온다. 

 

 

"…여보세요, 응, 난데."

 

 

긴장감 어린 목소리에 난간 위의 팔을 고쳐 기댔다. 

 

 

"어디쯤이려나. 오고 있니?"

 

"어, 응. 가고 있어. 거의 다 왔어."

 

"왜.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보아."

 

"아니, 별 일은 아니고…."

 

 

어깨를 앞으로 기울이자 자연스럽게 고개가 하늘로 젖혀졌다. 수국이 흔들리도록 바람이 부는 와중에도 노을 같은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에이프릴은 불현듯 가로등의 빛과 밤의 풀 내음, 잎이 저들끼리 스치는 모습을 다시 인지했다. 이따금 이런 순간이 있었다. 러디어드는 무대 아래에 있고, 자신은 무대 위에서 그와 시선을 마주한다. 그리고 그가 팔을 벌린다.

 

 

"그냥, 있잖아…."

 

 

자신은 한참 간 그를 응시하다 눈을 감는다.

 

 

"오늘도 좋아해."

 

 

그대로 팔을 뻗어 러디어드의 목을 감고 무게를 실어 내려가는 동시, 끌어 당긴다. 입매가 그린 것처럼 호선을 그린다.

 

 

"새삼스럽긴."

 

 

그리곤 천천히 무대 아래로 발을 내딛는다. 여전히 그를 안은 채.

 

 

"응. 좋아하지, 오늘도."

 

 

Posted by Anla :